대두 가공식품

두부, 두유, 장류 및 기타 대두 가공 식품의 역사와 영양, 가공방법을 담았습니다.

아이콘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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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즙(豆汁)?  두유(豆乳)!

콩국, 한자로는 두즙(豆汁)이라고 불렸던 두유는 오늘날 두즙보다 두유(豆乳)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두즙 문화 개화는 두부문화와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고, ‘두부즙’ 또는 ‘두즙’이라는 호칭은 고려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또한 조선조에 들어서서 대두를 ‘태(太)’라고 하기 시작하면서 ‘태두(太豆)’, ‘태포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조선조 후기에 들어서면서 두유라는 낱말이 공존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 도마위에 있는 두부와 콩
  • 두유는 동안/후안시대(25-200년)에 중국 북부에서 만들어 졌으며,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말기 또는 통일신라 초기에 식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 인장(印章) 밥을 만드는 원료로 두유(豆乳)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두유라는 용어는 조선조 중기에 출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청태죽(靑太粥)을 만드는 과정에서 청태를 갈아 만든 즙을 청태즙(靑太汁)이라고 하였는데 두즙의 또 다른 용어로 태즙(太汁)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 1236년(고려 고종 23년)에 편찬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의 기록에는 ‘목구멍의 마비 증상으로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대두즙을 끓여 물고 있으라.’ 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대두즙, 즉 두즙이 고려사회에 이미 향약(鄕藥)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며, 이미 식용으로 정착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대두를 끓인 즙은 심히 냉하니 번열(煩熱)을 거두고 모든 약독(藥毒)을 풀어준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두즙 자체가 해독제의 역할을 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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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은양의 대두 이미지
  • 두즙은 해독제의 역할 외에도 외래음료의 한 원료 또는 생활 용품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외래 음료의 하나로 조선조 중기부터 우리나라 고전에서 계속 전해지고 있었던 ‘오미갈수 (五味渴水)’에 대해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는 ‘오미자를 팔팔 끓은 물에 담가 하룻밤 재우고 우러난 오미자 즙을 취하여 다리고, 진하게 농축한 두즙과 꿀을 넣어 은근한 불에 한동안 졸여 차게 또는 덥게 뜻대로 마신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미자즙, 꿀과 곁들여 갈증을 풀어주는 데 두유를 이용 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 우의(油衣) 만드는 법에 대두가 원료들의 혼합액 역할과 도료(塗料)의 성형 역할도 한 것으로 나타나 비옷을 만드는 데도 두즙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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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의 세계화 과정
1. 한국콩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콩,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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